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를 12일 공습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최후의 피난처로 알려진 곳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민 안전 등을 이유로 공습에 반대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에 지자는 소리”라고 반발했다. 가장 밀접한 우방국이던 미국과 이스라엘 간 균열이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라파 지역은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곳으로 국제 구호단체들은 이곳을 통해 구호물자를 전달한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 230여 만 명 중 절반가량인 140만 명이 전란을 피해 라파로 피신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공습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은 무산될 전망이다. 하마스는 지난 6일 미국, 이집트, 카타르, 이스라엘 등 4개국이 마련한 휴전안을 수용하고 135일간의 휴전과 인질 교환을 골자로 한 역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7일 이를 거부하고 라파에서 하마스 소탕 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예고했다.
양국의 균열은 예견된 일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8일 고위 당국자들에게 “이스라엘 군사작전이 도를 넘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여론전으로 응수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패싱’하고 미국 국민에게 직접 전쟁 지지를 호소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11일 ABC뉴스, 폭스뉴스와 연달아 인터뷰하며 “라파에 군대를 보내지 말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은 하마스의 승리를 뜻한다”고 강조했다. WP는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 등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전쟁을 둘러싼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깊다고 보도했다. 복수의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더 이상 네타냐후 총리를 생산적인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한 아랍계, 진보층 등 유권자들의 지지 철회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아랍계 미국인의 지지는 4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종전 시나리오에서도 맞부딪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새로운 독립국으로 인정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두 국가 체제’를 확립해 평화를 이룩하자는 주장이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는 자국 안보를 위해 가자지구를 무기한 통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재점령에 가까운 강경한 주장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인터뷰에서 “정전 협상은 아주 멀리 있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팔레스타인이 자치권을 가질 수 있지만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통치해선 안 된다”며 “팔레스타인이 군대를 보유하고, 이란과 군사 협정을 하고, 북한 무기를 수입해야 하느냐”고 ‘두 국가 체제’에 강하게 반발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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